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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인이고

노동운동가였던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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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

말이 기다려지고

그의 풍자와 위트가

위안이 되었던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에 대한 실망도 그의 것이었고,

그에 대한 비난도 그의 몫이었기에...

 

오늘만큼은

나의 것, 나의 몫으로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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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魯會燦) : 1956년 8월 31일 ~ 2018년 7월 23일

 

- 1956년 부산에서 2남 1녀 중 장남. 197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

 

-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 : 인민노련 활동을 주도하던 중 198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체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 1992년 만기 출소. 당시 함께 인민노련 활동을 했던 사람으로는 송영길 민주당 국회의원, 신지호 한나라당 국회의원,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국회의원 등이 있다.

 

- 진보정당 추진위원회 : 진정추 1기(1992년 4월 ~ 1993년 3월) 사무총장을 거쳐 2~4기 대표를 역임(1995년 9월). 민중정치연합과의 통합을 추진. 1995년 9월 25일 민중정치연합과 통합하여 진보정치연합. 노회찬은 진보정치연합(이하 진정련)의 창립이후 진정련이 국민승리 21에 통합되기까지 대표 역임.

 

-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 참여 : 진정련은 1997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고 이를 기반으로 진보 정당을 만들자는 제안,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이 이에 동의. 1997년 대선 기구로서 국민승리21이 출범. 노회찬은 국민승리21에서 정책기획위원장으로 활동.

 

- 1997 대선 : 국민승리21은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후보로 내세우고 대통령 선거를 치루고, 1998년 6월 4일 대한민국 제2회 지방 선거에서 23명의 당선자를 내며 기사회생.

 

- 17대 국회의원 입성, 맹활약 : 노회찬은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아온 검사 7인을 공개한 이른바 "삼성 X파일"을 폭로. 또한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운동,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 학교급식 직영화, 일반병원까지 6세미만 어린이의 예방접종 무료, 아토피걱정 제로 프로젝트, 지역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법 개정 추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추진,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 전월세 세입자 보호법 추진등을 했다. 제 17대 국회 (2004-2008) 4년 임기동안 총 467건의 의안을 발의. 이중 본회의에서 가결된 의안은 총 31건이다.


※ 삼성 X파일 사건 : MBC 이상호 기자가 2005년 7월 22일 방송을 통해 삼성 X파일을 공개. X파일은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안기부가 당시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대화를 도청한 녹음테잎과 이를 분석한 안기부의 보고서를 말한다. X파일에는 1997년 4월 부터 10월까지 시시각각 변해가는 당시 정국을 반영한 삼성측의 전방위 로비실태가 담겨있던 것으로 전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X파일에는 삼성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엄청난 뇌물을 건냈으며, 최고위급 검찰 간부들에게 명절때마다 1천만원에서 5백만원의 떡값을 뿌리며 검찰 인맥을 관리했다는 내용등이 포함되어있었다.

 

- 삼성 X파일 사건으로 기소 : 검찰은 불법으로 금품을 수수한 고위 검사들을 처벌하지 않고 노회찬의원과 MBC 이상호 기자를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 1심에서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 2009년 12월 4일 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판사 이민영) 2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 판결.

 

- 2007년 대선과 진보신당 창당 : 노회찬은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 출마를 결정하고 대선 레이스에 참가. 자주파가 다수인 당내에서 조직력은 높지 않았던 노회찬은 당내 경선에서 패배. 결국 권영길 대선 참패 후, 자주파와 평등파의 동거는 사실상 실패. 노회찬 심상정은 함께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2008년 3월 16일 창당.


- 18대 총선 출마 : 노회찬은 진보신당 창당 직후인 2008년 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노원 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40%를 득표, 43%를 득표한 홍정욱에게 밀려 낙선. 진보신당은 지지율 2%를 넘겨 정당등록취소를 면할 수 있었으며, 정부의 정당보조금도 일부분 받을 수 있었다.

 

- 촛불시위 : 노회찬은 촛불시위 초기부터 활발하게 참여했다. '진보신당 칼라TV'에 리포터로 자주 참여하기도 했다.'진보신당 칼라TV' 방송 이외에도 연행자 면회 및 경찰서 항의 방문, 연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행위들에 대한 법률적 자문, 중간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을 위한 중앙당 상황실 개설 등의 활동을 했고 당원수의 증가로 이어졌다.

 

- 제2창당과 진보신당 대표 취임 : 심상정과 당 대표 경선이 예상됐지만 심상정의 불출마로 단독 출마해서 29일 열린 2차 당대회에서 전 당원을 대상으로 한 직접투표에서 97.9%의 찬성을 받아 당 대표로 선출.

 

- 서울시장 출마 : 2009년 진보신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 민주당 지지자들은 노회찬이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 단일화하였다면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선거가 끝나고 화살을 맞을대로 다 맞은 한참 후에 노회찬은 나꼼수 팟캐스트에서 한명숙쪽에서 단일화에 대한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고 밝혔다.

 

- 진보신당 탈당 통합진보당 창당 : 2011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이 논의. 하지만 종북주의 문제로 인하여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논의가 결렬. 노회찬은 심상정, 조승수 등과 함께 당을 탈당해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과 3당 합당해 통합진보당이 창당.

 

- 19대 국회의원 의원직 당선 9개월만에 상실 : 2012년 4월 11일 총선에서 서울 노원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57% 득표율로 당선. 2013년 2월 14일 대법원은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에대해 노회찬 공동대표에 대해 상고를 기각, 징역 4월(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형을 확정.

 

- 2014년 국회의원 보궐 선거 출마 : 노회찬은 2014년 7월 30일에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정의당후보로 출마. 출마한 선거구는 서울시 동작구 을이였다. 하지만 48.69%의 득표율을 올렸으나 2위에 그쳐 패배. 1위는 나경원이었고, 노회찬과 표차이는 928표였다.

 

 

- 2016년 총선 출마 : 제20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 성산 출마. 3선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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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관리자 2018.07.23 13:17

    안 믿깁니다. 당장 오늘 저녁에라도 라디오나 TV를 통해 뵐것만 같습니다.

  • ?
    RIP 2018.07.23 13:36

    이걸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뉴스공장 들을때 까지만해도

    노회찬의원님,노르가즘 팬이었는데..

    어찌이런일이..ㅜㅜ

     

    잠깐 기사를보니 드루킹쪽에 100회 강연료 2천만원 받았다 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더 마음 아프네요.

    1회에 20 만원 받으셨다는건데,,ㅜㅜ

     

    비리로 똘똘 뭉친자는 고개 치켜들고 오리발시전하며 다니는데 이분은 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또한, 드루킹의 배후가 누군지 샅샅히 밝혀야 합니다.

     

  • ?
    비파 2018.07.23 13:41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profile
    느티나무 2018.07.23 14:41

    말하고 쓸 글은 많지만, 이제 모든 마음으로,

    노회찬 원내대표님의 명복과 영면을 기원합니다...

  • profile
    관리자여친 2018.07.23 19:07

    뉴스공장 들었던 시절.

    "역시 노회찬"이라는 말을 입에 자주 담았었습니다. 촌철살인의 말들을 위트와 재치까지 겸비해 전해주던 그 시간들. 그게 불과 몇 개월 전인데. 너무 황망하고 믿기지가 않네요.

     

    명복을 빕니다.

    당신의 빛났던 특별했던 삶.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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