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피해자, 71년 흘러도 그날 고문 못잊어" [기사]

"제주 4.3 피해자, 71년 흘러도 그날 고문 못잊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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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안타깝습니다..


제주4·3 수형인, 올초 사실상 '무죄'
희생자 개인에 대한 배·보상은 아직 없어
특별법 국회 계류중...시간 많지 않다
4·3피해자들 "젊은이들이 기억해주길"

[ CBS 김현정의 뉴스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임재성 변호사(제주 4.3 수형인 법률대리인)


여러분, 제주 4.3 사건 잘 아시죠. 1947년부터 1954년. 그러니까 약 7년 동안 공권력의 탄압 앞에 제주 인구의 10%. 즉 3만 명이 숨진 사건입니다. 특히 그 3만 명 중에 33%는 어린이와 노인과 여성이었습니다.

바로 내일이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71주년 되는 날이죠. 제가 지난해에, 70주년 되던 해에 피해자 할머니 한 분 인터뷰했던 걸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합니다. 그때 그분이 그러셨어요. "내가 그때 9살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을 전부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해서 몰아넣더니 그냥 총을 쏴댔다. 죽은 엄마 품에 안겨서 젖을 찾던 그 아이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셨어요.

그 인터뷰가 참 찡했는데. 그 인터뷰 후로 벌써 1년 됐습니다. 뭐가 달라졌나 봤더니 4.3 특별법안이 4건이나 지금 나오긴 했습니다마는 1건도 통과되지는 못했습니다. 계속 계류 중입니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 하나는 그때 억울하게 투옥됐던 피해자들에 대해서 법원이 올초에 사실상 무죄에 해당하는 공소 기각을 선고했다는 건데요. 이게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하네요. 이 판결을 이끌었던 임재성 변호사 만나보죠. 임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 임재성> 안녕하세요.

◇ 김현정> 제주도분은 아니시네요?

◆ 임재성> 네, 서울 사람입니다.

◇ 김현정> 어제까지 제주도에 계시다가 올라오셨다고 제가 들었는데 지금 4.3 앞둔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 임재성> 70주년에 워낙 많은 일들이 있어서요. 그리고 이제 4.3에 대한 전국적인 인지도도 올라가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조금 더 이어간다. 이런 마음들이 많이 확인되었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엊그제 법안심사소위에서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 처리 시도는 있었는데 또 불발됐어요.

◆ 임재성> 지금 법안심사소위라는 게 그렇게 높은 단계는 아닙니다. 그렇게 논의가 돼야 행안위 차원에서의 위원회에서 논의가 되고 또 다시 본안에서 표결이 이루어져야 돼서 어떻게 보면 법안 심사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조차 돌파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쟁점은 배상, 보상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이 70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왜 지금 배상, 보상하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실 텐데 실제로 제주 4.3 같은 경우는 다른 과거사 사건과 다르게 개별적인 배상 보상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었습니다.

집단적인 평화재단, 평화공원 같은 위령 시설과 기구는 만들어졌지만 피해자 개개인들이 이 불법 행위를 통해서 개인들이 배상을 받는 절차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렇게 미완의 과제라고 이야기되는 배상, 보상의 논의가 있었는데. 역시 국가 입장에서는 예산이 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계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지금 4.3에 대통령이 가서 기념식 참석하시기도 하고.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예전하고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에 뭔가 피해자분들도 구제받으셨겠지, 배상도 좀 받으셨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군요.

◆ 임재성>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유일하게 지원되는 것들이 의료 지원금, 생활 지원금이라고 해서 많지 않은 복지 정도의 비용이었지 실제로 과거에 불법적인 일을 했기 때문에 국가가 배상하겠다. 국가가 그 책임을 지겠다라는 그런 절차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 김현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결실이 있다면 최근의 판결입니다. 임재성 변호사가 이끌었던 판결인데 그 당시에 군사 재판으로 억울하게 수감됐던 피해자들이 재심을 신청했고 결국 공소 기각. 그러니까 이게 무죄 판결의 의미라면서요? 이걸 이끌어내신 거예요?

◆ 임재성> 네, 그 사건을 맡게 되어서 또 좋은 결과가 있게 돼서 굉장히 보람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에서 한 유가족이 각명비 앞에서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있다. 박종민기자
◇ 김현정> 피해자 몇 분이나 참여하셨어요?

◆ 임재성> 70년 전의 사건이기 때문에 생존해 계신 피해자가 많지 않습니다. 당시에 2530여 개의 불법적인 군사 재판이 있었는데 생존해 계신 30여 명의 피해자분 중에 열여덟 분이 이번에 재심을 청구했고 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 김현정> 30여 분 왜 다 참여 안 하시고 열여덟 분만 하셨어요?

◆ 임재성> 제주도에 안 계신 분들은 일단 제주도까지 재판을 받으러 오시는 것이 쉽지 않으시고 사실 재심을 처음에 신청할 때만 해도 이게 될지 안 될지에 대한 확신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주도에 살고 계신 그나마 건강이 좋으신 분들부터 재심 신청을 해 보고 좋은 결과가 나오면 육지에 계신 분들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적지 않게 요양원에서 지금 치매를 앓고 계신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나머지 분들의 재심에 대해서는 저희가 적극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지만 아마 나머지 열 분 모두가 참여하기는 어려우실 것 같은 건강 상황이십니다.

◇ 김현정> 그래요. 그래서 열여덟 분이 참여하셨는데 제가 듣기로는 그분들이 찾아와서 '임재성 변호사, 이거 같이 좀 해 주세요' 라고 했을 때 재심을 말리셨다면서요? 오히려 말리셨다면서요?

◆ 임재성> 사실 이 4.3 군법회의의 특수성이라는 게 절차가 너무 불법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기록조차 만들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이 없는 건 기본이고 정작 이분들이 법정에서 자신들이 몇 년 형이라는 걸 듣지도 못하고 육지에 있는 감옥에 가서야 내가 징역 1년이다, 징역 5년이다를 그때 들으셨던 거죠.

그래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재심의 절차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오히려 불법 구금으로 국가 배상 청구를 하자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이분들이 명예 회복하고 싶다, 나 법정에서 무죄 선고받고 싶다라고 하셔서 본인들이 원하시면 한번 이 절차를 해 보자라고 제가 시도를 했었는데 아주 다행히 길지 않은 한 2년여의 시간을 통해서 무죄의 성과까지 이루어졌었습니다.

◇ 김현정> 이게 워낙 오래돼서 증거 자료 찾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정말.

◆ 임재성> 원래 판결문이라는 건 영구 보존 기록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가 가지고 있어야 되는 건데요. 시간이 오래됐기 때문에 자료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아무런 자료도 만들지 않았던 것이죠. 하루에 100명, 200명을 마치 처벌하는 것처럼, 처형하는 것처럼 재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록이 없었던 것은 오히려 당시에도 만들지 않았던 것이라고 저희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래서 어떡하셨어요? 남아 있는 게 없어서. 어떻게 하셔서 무죄를 이끌어내신 겁니까?

◆ 임재성> 다행히 1999년에 국가기록원에 있었던 수형인 명부라는 게 발견이 되면서 약 2500여 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군사 재판을 받았구나라는 전체의 규모와 개별적인 명단은 확인이 됐고요. 다른 하나는 이분들이 생존자분들이시잖아요. 그래서 본인들의 고통을 법정에서 증언을 하셨었고.

◇ 김현정> 증언이 가능하니까.

◆ 임재성> 재판부가 그 증언의 신빙성을 높게 판단해서 이분들의 재심 개시 결정까지 만들었던 것입니다.

◇ 김현정> 법원의 결정이 한 2년여 만에. 정확히는 1년 7개월 만에 나왔을 때 그분들 얼마나 기뻐하시던가요?

◆ 임재성> 사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셨죠. 죽기 전에 한번 제대로 된 재판을 받고 싸워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 사실 처음에는 실감이 잘 안 나셨다고 그래요. 제가 최근에 또 가보면 자기 전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제 무죄구나. 70년 동안 유죄, 전과자, 폭도, 빨갱이였는데 내가 이제 무죄가 돼서 살아갈 날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열심히 기운 내서 살아가고 있다라고 얘기하실 때 참 기분이 좋죠.

◇ 김현정> 제가 그 증언 관련. 그러니까 법원의 결정 나오고 나서 나온 기사를 쭉 읽다 보는 김평옥 할머니 말씀이 인상적이시더라고요. 이 할머니가 "몸이 움찔움찔거린다. 날개가 있으면 날고 싶더라. 나를 70년 동안 옭아맸던 끈이 풀리는 기분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던데 얼마나 한이 맺히셨으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갈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가 나올까 싶던데. 다들 그러셨던 거죠?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제주4.3평화공원 (자료사진=연합뉴스)
◆ 임재성> 김평옥 할머니는 법정에서 이렇게 얘기를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4.3 어떻게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까. 제가 여쭤보니까 아픈 걸 누가 덜어줄 수는 없다. 다만 젊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아이고, 어르신, 이런 고생 많이 겪으셨습니다라고 이야기만 해 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정말 바라는 거다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고요.

또 그렇게 좋은 얘기도 있지만 또 안타까운 얘기도 했습니다. 현창용 할아버지 같은 경우는 재판 중에 너무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정작 무죄 판결을 받고 나서 3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현창용 할아버지께서 법정에서 군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딱 하루 고문을 당하셨었는데 그 하루의 고문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혹시 누가 이 고문의 기억을 잊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다.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 그 고통이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하시는데 결국 무죄 판결받으신 이후에 그렇게 오래 살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진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음이 무겁고요. 또 어쨌든 이제 무죄 판결 나왔으니까 이후에 형사 보상이나 국가 배상 청구를 통해서 이분들이 조금이나마 남은 생을 누리셨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지금 청취자 김** 님이 '저는 제주도민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좀 대신 전해 주세요 .' 이런 문자 보내셨어요. 제가 감사하다는 말씀 꼭 대신 전하고요. 여러분, 제주도민의 10%가 학살당한 사건입니다. 지금도 제주도 가면 서로 쉬쉬해서 그렇지 내 가족, 내 지인, 친척 중에 한 사람쯤은 다 4.3에 뭔가 피맺힌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라는 거. 너무 남 얘기처럼, 한참 전 이야기처럼 그렇게 흘려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 드립니다. 임재성 변호사님, 고생 많이 하셨고요. 오늘 고맙습니다.

◆ 임재성> 감사합니다.

◇ 김현정> 제주 4.3 수형인 법률 대리인입니다. 임재성 변호사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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