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 부모 [자필]
7년 전
3년 동안 몸져 누워 계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는 평생 장남이라고 그렇게 위하시면서 사시던 큰외삼촌을
당신 인생의 마지막을 힘들게 부여 잡고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 엄마는 그런 외할머니에게 큰 삼촌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마음에
서울에 사시는 외삼촌께 전화를 드렸다.
"오빠 엄마가 얼마 못 사실것 같아. 빨리 와 봐야 할 것 같아."
삼촌 내외는 치과 치료 중이라시면서 얼른 끝내고 가겠다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삼촌이 늦는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눈물 한방을 흘리시고는 운명하셨다.
그 이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두 분 모두 임실 호국원에 모셔지고
두분 기일의 중간 쯤인 광복절이면 우리 외가 식구들은 모두 매년 임실 근교 리조트에서 일박하고
부모님 기일을 보낸다. 제사는 모시지 않지만,
그 날이라도 형제들 모여 얼굴이라도 보고 산소에 성묘라도 가자는 취지다.
모든 준비는 이모들이 하시고 외손들, 외증손들까지 가능하면 다 모인다.
비용도 거의 큰 이모가 다 지불하신다.
하지만 사건은 몇 년전 기일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이다.
큰삼촌 외숙모께서 딱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고양이들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파. 개내들이 얼마나 여리고 불쌍해 보이는 지 모르겠어"
"너무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몇번 집에 데려가서 키웠다니까."
이 말을 들은 이모들과 나는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께서 3년 몸져 누워 계실 때,
막내이모는 이사를 가야만 했다 더 오래된 아파트로...
고3, 고1 딸이 있어 방이 4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방 하나는 몸져 누워 거동도 못하시는 할머니가 누워계셔야 했기 때문이다.
두 동생들 모두 단 한마디 불평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모네 우리집 외가 모두 가까이 살았고,
할머니께서 평생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아셨기 때문이다.
두 동생 모두 공부 잘했고 성적도 우수했다. 대학도 잘 갔다.
이모와 엄마는 매일 할머니 몸닦고 기저귀 갈고 식사드리고 하는 수발이 일상이었다.
몸져 누우시기 전에는 여름에 계곡이라도 간다 싶으면
주차장에서부터 이모부와 내 아버지가 할머니를 업고 산을 오랐다,
할머니는 사시면서 꼭 서울 아들 집에 한번 가보고 싶어 하셨다.
물론 한번 모시고 오라는 삼촌이나 숙모 말씀은 없었다.
오빠가 언니한테 구박 받을까봐 엄마나 이모들은 절대 강요 하지도 않았다.
삼촌도 말한번 꺼내지 않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쓰게된 것은 아침부터 출근하자 마자
http://www.etoland.co.kr/bbs/board.php?bo_table=etohumor03&wr_id=1377561
이 글을 보고 묘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외숙모는 할머니에게는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길고 긴 세월을 교류하며 살면서 그만한 애정 하나 없었을까...
나는 궁금하다.
동물에게 가지는 연민과 애정같은 감정만큼
같은 감정을 사람에게도 가지고 있는지...